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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일기

사진찍는집사 2020. 11. 26. 16:57

가끔 배달을 시키면서 자신도 같이 태워달라는 손님이 있다.
보통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들이다.
버스가 빨리 끊기는 시골이라 해가 지기 전에 차가 끊기는 그 사정이야 알겠지만
회사 차원에서 손님을 태워주지 말라는 규정이 있다.
혹시나 사고가 나면 감당이 안되고 한명을 태워주기 시작하면 온 동네 사람을 다 태워주게되기 때문이다.
그 습성을 나도 너무나 잘 안다.

오늘은 남편을 일찍 보내고 혼자 사는 할머니가 배달을 주문하며 자기도 태워달라고 한다.
안된다고 완강히 말하니 눈물을 글썽거리며 손을모아 부탁한다.
자기 나이의 반도 안되는 청년에게.

마트에서 나와 골목을 꺽어야 보이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차가 보이니 또 두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며 부탁을 한다.
구역질이 난다.
저렇게까지 해야하는 삶이 안타깝고, 회사 규정이라는 명분으로 그렇게까지 완강히 거절한 내 모습이 역하다.

가장 말단직원인 내 처지 때문에 다른직원 몰래 태워주고 만다.
가는 길 내내 미안하다 고맙다 얘기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들키면 내가 짤린다 얘기만 반복한다.

차로 겨우 5분남짓 거리.
이런 작은것조차 베풀지 못하는 내 처지와
이런 작은것조차 이렇게까지 간절히 부탁해야하는 저분의 처지가 안타깝다.

시골집이 그렇듯 마당과 대문이 있지만 어느것 하나 멀쩡한것이 없다.
집안도 관리가 안되는 듯 허름하다.
찬공기만 멤돈다.
이 집에 찾아오는 손님이 누가 있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 감내하고 있을까.

콩나물,청경채,요구르트.. 사가는 물건도 고기하나 없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한없이 초라한 모습이다.

물건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부러 천천히 걷는다.
겨우 이런 작은 일 조차 친절을 베풀지 못하는 나지만 헹여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을까봐.
물건만 놓고 휑하니 가버리면 그게 괜히 서글플까봐.

겨울이 빨리 끝나길 바라본다.
차가운 공기만 감도는 이 집에 한줌햇살이라도 들게.